은혜선교회_Mercy Mission_아프리카를 덮는 은혜의 손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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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21
2005-06-26 02:08:06
mercy mission
모잠비크 (Republic of Mozambique)
모잠비크 Republic of Mozambique

요약  

아프리카 남동부 인도양에 면해 있는 나라. 정식 명칭은 모잠비크공화국이다.

면적@80만 1590㎢  
인구@1960만 7519(2002)  
인구밀도@24.4명 ㎢
수도@마푸토  
주요언어@포루투갈어  
종교@가톨릭·이슬람교·부족종교  
통화@메티칼(Mt)  
환율@1달러=2만 3347.5Mt(2002.11)  
국내총생산@175억 달러  
(2001)@1명당 900달러  
무역수지@수출 7억 4600만 달러  
(2001)@수입 12억 5400만 달러  
설명  

아프리카 남동부 인도양에 면해 있는 나라. 정식 명칭은 모잠비크공화국(Repuública de Monçambique)이다. 면적 80만 1590㎢. 인구 1960만 7519(2002). 북쪽은 탄자니아·말라위, 서쪽은 짐바브웨·남아프리카공화국·스와질란드와 국경을 마주하고 있다. 수도는 마푸토.

  인도양을 따라 긴 해안선이 있고 내륙으로 갈수록 고도가 높아져 짐바브웨 국경언저리에 이르면 해발고도 약 2400m가 된다. 해안평야는 북부는 비교적 좁고 남부로 갈수록 넓어진다. 여러 하천이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르며, 북부에 탄자니아 국경인 루부마강·루리우강, 중앙부에 잠베지강·푼그웨강·사베강, 남부에 창가네강·림포포강 등이 있다. 수량이 많아 수력발전·관개에 이용될 가능성이 높으며, 잠베지강의 테테 상류에 아프리카대륙 최고의 발전능력을 보유한 카보라바사댐이 있다. 기후는 북부·중부는 열대기후, 남부는 아열대기후에 속하며 남북의 기후차는 적다. 우기(10∼4월)와 건기(5∼9월)로 나누어지며, 해안부는 강수량이 풍부하여 농업에 알맞다. 기온은 내륙에 비해 해안부가 높고, 건기에는 17∼20℃, 우기에는 27∼30℃ 정도이다. 하천연안은 열대·아열대 우림으로 뒤덮여 있어 해안지역에서는 맹그로브(紅樹林)와 코코스 야자를 흔히 볼 수 있다. 내륙은 대체로 사바나기후이다.

  원주민은 산족(부시먼)으로 10세기 무렵 반투어계(語系)의 짐바족·통가족·세나족이 서북쪽에서 이주해 왔다. 14세기에는 카랑가족의 모노모타파왕국이 현재의 모잠비크와 짐바브웨에 걸친 넓은 지역을 지배했다. 왕국은 인도양을 통해 아시아와 장거리교역을 했으며 16세기에 전성기를 맞았다. 이 왕국의 자취는 현재 짐바브웨 남부에 거대한 석조건조물이 유적으로 남아 있다. 해안지역에서는 7세기 무렵부터 아랍인이 소팔라·모잠비크를 중심으로 교역도시를 건설했지만, 그 완성은 15세기 끝무렵 찾아온 포르투갈인에 의해서였다. 포르투갈인은 처음에는 포교활동에 전념했으나 16세기중엽 군대가 들어와 모노모타파왕국을 멸망시켰다. 17세기에 포르투갈인의 이주가 진행되면서부터 대지주(플라제이로)가 많은 아프리카인을 강제노동으로 혹사시켰으며 플랜테이션농업을 운영하는 대토지소유제도(플라조제도)가 발달했다. 18세기는 노예사냥이 가장 번성했던 시기로 켈리마네항을 통해 많은 노예가 브라질에 수출되었다. 아프리카 분할을 결정한 1884∼85년 베를린회의에서 모잠비크는 포르투갈령 동아프리카가 되었으며, 90년 로디지아(현재 짐바브웨)에 이주해 온 영국의 남아프리카특허회사와 국경을 둘러싼 분쟁이 계속되었다. 또 86년 트란스발(현재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금광이 발견되자 바다로 이어지는 가장 짧은 루트로서 로우렌수마르케스(현재 마푸토)항구의 중요성이 높아지면서, 항구와 금광지대를 잇는 철도가 건설되었다. 1930년 포르투갈의 O. 살라자르가 해외문제장관이 되자 본국과 식민지 관계가 한층 긴밀해져 본국으로부터의 이주자가 급증했다. 51년 식민지는 해외주로 개칭되어 본국경제에 편입되었고, 모잠비크에서 재배된 사탕수수·사이잘삼·코프라 등의 농산물은 포르투갈로 수출되었다. 포르투갈의 식민지 지배는 징세와 강제노동에 중점을 두었으며, 이에 대해 아프리카인의 반항이 곳곳에서 일어났다. 62년 아프리카인 민족조직인 모잠비크해방전선(프렐리모;FRELIMO)이 E. 뭉들라네에 의해 결성되었으며, 64년 9월 무력해방투쟁을 선언하면서 게릴라전이 벌어졌다. 탄자니아를 기점으로 남쪽으로 내려온 프렐리모는 다음해 전국토의 약 20%를 해방시켰고, 70년에는 소련·중국의 원조를 받아 잠베지강 이남지역까지 해방시켰다. 74년 4월 포르투갈에서 군사쿠데타가 일어나 파시즘정권이 무너지자 새로운 정권에 의해 해외주의 해방이 선언되었다. 74년 9월 루사카협정으로 잠정적인 정부수립이 결정되어 75년 6월 25일 독립을 이루었다.

  독립 뒤 초대 대통령에 취임한 S. 마셸은 사회주의를 목표로 노동자·농민을 대표하는 프렐리모에 의한 일당지배체제를 구축하였다. 그는 식민지 잔재의 일소, 인민민주주의 확대·경제자립·독립과 통일의 방위·반식민주의와 반제국주의투쟁 등을 내걸고, 생산수단의 국유화·집단화를 채택하였다. 프렐리모는 77년 2월 제 3 차 전당대회에서 스스로를 전위당으로 규정하였고, 남부 아프리카의 백인지배에 반대해 이웃나라인 짐바브웨의 해방투쟁을 적극 지원하였다. 이러한 사회주의 노선에 반대하여 포르투갈인을 중심으로 한 반정부조직 모잠비크민족저항운동(MNR;또는 레나모)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지원을 받아 마셸정권 타도를 목표로 파괴활동을 계속해왔다. 그러나 86년 10월 잠비아를 방문하던 마셸이 비행기 추락사고로 숨지자 후임으로 외무장관이던 J. 치사노가 대통령에 취임하여 MNR와의 화해를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펴왔다. 89년 9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드 클레르크대통령이 모잠비크를 방문하면서 MNR의 파괴활동은 둔화되었다. 90년 소련과 동유럽의 변화에 영향을 받은 인민의회는 복수정당제를 기반으로 한 민주정치를 도입하는 신헌법을 채택하였다. 신헌법은 국명을 모잠비크인민공화국에서 모잠비크공화국으로, 인민의회는 공화국의회로 명칭을 변경하는 것을 골자로 하여 시장경제의 도입, 보도의 자유, 사법의 독립 등을 명기하였으며, MNR의 정당 참가를 촉구하였다. 7월 정부와 MNR는 로마에서 직접교섭을 벌여 독립 이래 15년 만에 내전종결원칙에 합의하게 되었다. 정부와 MNR은 정식으로 평화협정에 조인했다. 93년 10월에는 남아프리카공화국과 국교를 수립했으며, 주변 여러 나라로 흩어진 난민 약 170만 명이 송환되었다. 94년 10월 이루어진 대통령과 국회의원선거에서 치사노대통령이 재선되어, 프렐리모가 제 1 당이 되었고 99년에 3선되었다.

  독립 뒤 모잠비크는 농업을 기반으로 한 사회주의국가 건설을 목표로 하여 취업인구 대부분이 농·어업에 종사하며 수출품의 약 80%를 농산물이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64년부터 시작되어 10년 이상 걸린 무력해방투쟁으로 인해 경지가 전쟁터로 바뀌고 투쟁 말기에 많은 포르투갈인 기술자가 국외로 탈출했다. 또 독립 뒤 프렐리모의 사회주의노선 채택과 모든 산업분야에 걸친 성급한 국유화정책 및 이에 반대하는 잔류 포르투갈인을 중심으로 한 반정부게릴라 투쟁, 가뭄으로 인한 기아 등으로 모잠비크경제는 위기를 맞게 되어 국제식량농업기구(FAO) 등 여러 국제기구의 원조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주요 수출작물은 캐슈너트·면화·코프라·사탕수수·사이잘삼 등인데 무역수지는 계속 큰 적자를 내고 있는 실정이다. 식량작물로는 옥수수·쌀 등이 재배되고 있다. 독립 뒤 생산·유통면에서 협동화가 진행되어 전국에 2000개 이상의 협동농장이 설치되었다. 협동농장은 보통 250가구를 한 단위로 하며, 가구당 0.5ha의 자영지와 작은 가축의 사유는 인정되지만, 그 밖에는 집단생산제로 생산물은 노동량에 따라 분배된다. 해안선이 긴 모잠비크는 어업도 중요한 산업의 하나인데, 약 300개의 어업 협동조합이 설립되어 있다. 광산자원은 아직 미개발 상태여서 현재 채굴되는 것은 모아테즈의 석탄(연생산량 50만t)뿐이며, 철광석·보크사이트·망간·니켈·우라늄·석면 등이 매장되어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제조업도 발달하지 못하여 농산물가공·섬유·제화·시멘트 등의 공업밖에 없다. 포르투갈계 기업은 독립 뒤 거의 국유화되었다가 90년 이후 다시 민영화되었다. 강물이 풍부하여 식민지시대에 포르투갈·남아프리카공화국·이탈리아·프랑스 4개국으로 이루어진 국제차관단에 의해 건설된 잠베지강의 다목적 카보라바사댐은 2000MW의 발전능력을 지니고 있다. 국내 광공업이 발달하지 않은 상태여서 현재 그 전력 대부분이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송전되고 있다. 또 연간 85만t의 정제능력을 가진 정유소가 마푸토에 있다. 제 3 차산업이 국민총생산(GNP)의 약 65%를 차지하는데, 그 내역은 다음과 같다.
① 남아프리카공화국·짐바브웨·스와질란드 화물의 철도·항만거래수입
②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광산취업 수입
③ 관광수입 등이다. 철도는 총길이 3843㎞로 긴 해안선과 좋은 항구와 함께 내륙 각국과 항구를 잇는 역할을 하고 있다. 1987년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과의 협의 아래 구조조정계획을 실시하였다. 기업의 민영화 작업이 꾸준히 진행되어 97년 말까지 1000여 개 기업이 민영화되었다. 대규모 도로건설사업이 진척되어 마푸토와 남아프리카공화국 비트방크를 연결하는 도로가 복구되었다. 나칼라와 베이라 지방을 잇는 주요 도로들도 건설되었다. 예산 적자는 외국원조와 융자에 의존하여 95년 대외채무는 57억 8100만 달러에 이르렀다. 한편 98년 지방선거는 야당이 참석하지 않은 가운데 15∼20% 투표율을 기록해 극심한 정치불신을 나타냈다.

  주민은 대부분 반투계 흑인이며 많은 부족으로 이루어져 있다. 포르투갈인 등 백인은 12%를 차지한다. 포르투갈어가 공용어이나 일상적으로는 각 부족어가 쓰인다. 초등교육은 의무제이나 문맹률이 높으며, 마푸토에 국립뭉들라네대학이 있다. 보도기관으로는 통신·라디오·텔레비전·신문이 있으나 모두 국영이다. 종교는 사회주의체제 아래에서 세력이 약화되었지만 가톨릭·이슬람교·부족종교 등이 있다. 97년 징병제를 부활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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